박쥐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보통 어두운 지붕 밑이나 으스스한 동굴 같은 곳에 살다 보니까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서양에서는 마녀가 박쥐로 변신해서 집으로 들어온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리한 것을 찾아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사람을 우리가 ‘박쥐 같다’라고도 표현하기도 합니다. 박쥐는 포유류 가운데 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데요, 어떻게 보면 포유류와 조류의 중간에 있는 동물처럼 느껴져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동양에서는 박쥐가 전혀 반대 이미지로 기록돼 있습니다. 박쥐는 복을 의미하기 때문에 궁궐이나 건축물 등에 새기기도 했고요, 또 장수와 다산을 뜻한다고 해서 여성들의 장신구나 침구 등에 박쥐를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사실 박쥐는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동물인데요, 생물학자들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동식물’로 박쥐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있습니다. 우선 박쥐는 꿀벌이나 나비처럼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바나나나 복숭아, 무화과와 같이 다양한 과일들이 박쥐가 꽃가루를 옮긴 덕분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죠.
또 박쥐는 자연계의 ‘살충제’라고 불리는데요, 엄청난 양의 해충을 잡아먹어서 해충의 개체 수를 조절해 줍니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의 한 동굴에서는 2천만 마리의 박쥐 무리가 하룻밤 사이 200톤의 곤충을 먹어치운 것이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드라큘라’와 같은 영화의 이미지 때문에 오랫동안 박쥐가 ‘흡혈동물’로 알려져 왔는데요, 1천400여 종의 박쥐 가운데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박쥐는 3종 정도에 불과합니다. 주로 중남미에 서식하는 흡혈박쥐는 몸길이가 8cm, 날개폭이 18cm 정도로 작은 편인데요, 밤에 가축이나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입니다.
박쥐는 머리 부분을 통해서 2만~10만Hz의 초음파를 발사하고,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귀로 듣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어두운 곳에서도 길을 찾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고요, 먹이를 잡을 때도 먹이의 종류와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박쥐의 음향 위치 확인 능력, 즉 에코로케이션(Echolocation)은 매우 흥미로운 생물학적 현상 중 하나입니다.
이 능력은 일반적으로 박쥐가 어두운 환경에서 이동하고 먹이를 찾는 데 사용되며, 우리가 소리를 듣고 파악하는 방식과는 다소 다릅니다. 에코로케이션은 특히 박쥐가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피하며, 다른 박쥐와 소통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에코로케이션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박쥐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발산하고, 이 소리가 물체에 부딪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을 감지합니다. 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소리, 즉 '에코'를 분석함으로써 박쥐는 물체의 위치, 크기, 모양, 움직임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소리의 속도는 약 343미터/초이므로, 소리가 발산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 차를 통해 박쥐는 물체와의 거리를 계산합니다. 또한, 각기 다른 물체에서 반사되는 에코의 주파수와 강도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박쥐는 물체의 종류와 크기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박쥐의 에코로케이션 능력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며, 이를 통해 박쥐는 어두운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 선택의 결과로 발전된, 매우 독특하고 뛰어난 생물학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쥐가 내는 초음파는 사람이 들을 수 없지만, 실제로는 60~140dB에 달하는 큰소리라고 하는데, 연구 결과, 박쥐는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의 초음파 신호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연구팀이 이집트 과일박쥐를 대상으로 모두 1만5천 건의 초음파 신호를 관찰해봤는데요, 먹이를 두고 다툴 때, 짝짓기할 때, 잠을 자려고 무리를 이룰 때, 또 무리를 이룬 뒤에 서로 간의 거리를 조정할 때 이렇게 네 가지 경우 모두 다른 형태의 신호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박쥐가 이성에게 신호를 보낼 때는 초음파 톤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연구팀은 박쥐의 초음파 주파수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호가 더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박쥐는 장애물을 피해 날 때는 초음파를 이용하지만, 야간에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초음파보다 지구가 뿜어내는 자기장에 의존해 비행합니다.
과학자들이 자기장 발생장치를 이용해서 자기장의 흐름이 다른 3개의 환경을 만든 뒤에 60여 마리 박쥐를 풀어줘 봤는데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자기장의 방향을 120도 뒤집자 따뜻한 남쪽으로 가야 할 박쥐들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자기장 방향이 갑자기 반대로 바뀌면서 비행 방향도 바꾸게 된 거죠.
또 자기장 흐름을 수평과 수직으로 모두 뒤집은 경우 박쥐들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결국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결국, 박쥐는 철마다 서식지를 옮길 때 해가 지는 방향에 따라 동서남북을 인식하기도 하지만, 자기장에 따라 비행 방향을 조정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런데 또 박쥐 하면 사실 전염병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최근 전 세계적인 팬데믹을 겪은 만큼 이런 이미지가 더 부정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뿐 아니라 우리가 이전에 겪었던 사스나 메르스 같은 여러 감염병 바이러스들이 박쥐를 통해서 옮겨진 것인데, 사스는 중국 윈난성 동굴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를 거쳐서 사람에게 전파되었고요, 메르스의 경우는 이집트 무덤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낙타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된 것입니다.
실제로 박쥐의 몸에는 130여 종, 많게는 200여 종에 달하는 바이러스가 서식하는데, 이 가운데 60여 종이 사람에도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입니다.
그렇다면 박쥐는 수많은 바이러스를 몸 안에 갖고 사는 건데, 왜 정작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척추동물의 경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터페론이라는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면역 반응이 일어납니다. 사람도 면역체계가 활성화되면 열에 약한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고열이 나고 이로 인한 오한이나 어지러움, 통증 등을 느끼게 되죠. 일종의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건데요, 문제는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이런 염증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오히려 우리 몸속의 정상 단백질을 변형시키고 몸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와 싸울 때 나타나는 과도한 염증 반응이 더 큰 피해를 주는 거죠.
그런데 박쥐는 면역 체계가 조금 다릅니다. 박쥐는 인터페론을 조절하는 단백질의 기능이 떨어지고, 인터페론 분비가 원활하지 않은 편인데, 이 때문에 인터페론 분비량이 적어서 바이러스에 대한 염증 반응도 적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지만, 증상이 없는 거죠.
또 박쥐는 밤에 최대 350km를 비행하는데요,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활발하고 체온이 높은 편입니다. 보통 40도 정도로 체온이 높게 올라가 있기 때문에 면역 체계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아도 충분히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데요, 다만 염증 반응이 나타나서 체온이 단 1, 2도만 높아져도 박쥐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 사스와 같은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이 불과 20년 전인데요, 사람이 토지를 개발하고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인수공통감염병이 확산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자연을 개발할수록 박쥐들은 더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해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봤는데요, 실제로 독일 연구팀이 분석해 봤더니, 토지 개발이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과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지역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박쥐들이 질병에도 취약해졌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숲을 벌목하거나 농경지로 바꾸면 박쥐들이 휴식할 곳이 없어지고요, 살충제를 사용하면 박쥐들의 주식인 곤충이 부족하게 되겠죠.
또 채굴이나 광산 개발 등은 박쥐들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박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기 더 쉽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